공연이 끝나면 객석에서는 박수가 쏟아진다. 연주자들은 인사를 하고 무대의 조명은 하나둘 꺼진다. 그러나 음악을 완성하기까지 무대 뒤에서 흘린 땀과 수많은 고민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수십 명의 연주자가 하나의 선율을 만들어 내도록 이끄는 사람, 군산시립교향악단 이명근 상임지휘자다.
그가 꿈꾸는 오케스트라는 지휘자 한 사람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악단이 아니다. 서로의 소리를 듣고 마음을 맞추며, 지휘자가 떠난 뒤에도 스스로 좋은 음악을 만들어 내는 공동체다.
“음악에 진심인 사람, 따뜻한 리더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짧은 한마디에 그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담겨 있다.
■ 음악은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이 지휘자가 처음부터 음악가를 꿈꾼 것은 아니다. 성악을 했던 아버지가 교회 성가대를 이끌며 지휘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음악은 특별한 목표라기보다 가족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세계였다.
팝과 가요, 뮤지컬부터 클래식까지 다양한 장르를 접했던 그는 고등학교 시절 음악을 전공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이후 스승의 권유로 지휘 공부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길을 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지휘를 공부하고 독일과 미국에서도 음악적 경험을 쌓았다. 부다페스트 국제 지휘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했으며, 여러 교향악단에서 지휘 경험을 쌓은 뒤 2022년 군산시립교향악단 제11대 상임지휘자로 부임했다.
화려한 이력 뒤에는 오랜 시간의 훈련과 배움이 있었다. 그가 스승으로 꼽은 정치용 교수에게서 배운 기본은 지금도 음악을 해석하고 단원들과 호흡하는 토대가 되고 있다.

■ 좋은 지휘자는 사람의 소리를 먼저 듣는다
“지휘자가 연주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연주자들이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이죠.”
그는 지휘자가 모든 것을 통제한다고 좋은 음악이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필요한 순간에는 분명하게 이끌되, 연주자들이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기다리는 균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에서는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지만, 모든 순간에 앞에 설 수는 없다. 때로는 선율을 이끌고, 때로는 다른 악기의 소리를 받쳐 줘야 한다. 서로의 연주를 듣고 자신의 역할을 이해할 때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그가 군산시립교향악단의 강점으로 꼽은 것도 단원들의 순수함과 열정이다. 개인의 기량을 뽐내기보다 함께 좋은 연주를 만들어 내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장점을 바탕으로 지휘자의 역량에만 의존하지 않는 악단을 만들고 싶어 한다. 자신이 자리를 떠난 뒤에도 단원들이 스스로 성장하고 음악적 경쟁력을 이어 가는 것, 그것이 남은 시간 동안 이루고 싶은 목표다.
■ 클래식의 벽을 낮추고 시민의 마음에 다가가다
클래식은 누군가에게 깊은 감동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낯설고 어려운 음악이다. 그는 전문성을 지키면서도 시민들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만드는 일이 시립교향악단의 중요한 책무라고 강조한다.
익숙한 명곡과 영화 음악을 선보이는 한편, 생소한 작품은 공연 전 설명을 통해 배경과 의미를 알리고자 한다. 음악을 무조건 쉽게 바꾸기보다 시민들이 작품을 이해하고 감동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생각이다.
그에게 음악은 사람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간다. 같은 곡을 들어도 누군가는 위로를 얻고, 누군가는 기쁨을 느끼며, 또 다른 사람은 지나온 삶을 돌아본다.
음악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감정을 요구하지 않기에 더 큰 힘을 지닌다는 것이다.
군산의 역사와 바다, 섬과 자연을 선율로 표현하려는 시도 역시 지역과 예술을 잇는 작업이다. 시민들이 익숙하게 살아온 도시를 음악으로 새롭게 만나고, 지역의 이야기가 문화적 자산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는 클래식과 대중가요, 트로트, 영화 음악을 아우르고 지역 가수와 연주자들이 함께하는 공연에도 긍정적인 뜻을 밝혔다.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진 시민들이 한 무대에서 어울리고, 지역 예술인에게는 활동의 기회가 넓어지는 축제를 구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박수보다 오래 남는 것은 음악을 향한 진심
음악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그는 끈기와 즐거움을 함께 강조했다. 반복되는 연습과 지루한 과정,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을 견뎌야 하지만 그 안에서도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이다.
단원들에게는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예술가라는 자부심을 지켜 달라고 당부한다. 시민에게 더 좋은 음악을 들려주려는 열정이 환경의 제약만으로 사라져서는 안 된다는 바람이다.
그는 공연장을 찾아 응원하는 군산 시민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관객의 박수와 따뜻한 격려가 다음 무대를 준비하는 힘이 된다고 했다. 비판과 충고 역시 악단이 성장하는 데 필요하지만, 관심과 응원이 더해질 때 더 좋은 공연으로 보답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지휘봉을 든 사람은 무대의 중심에 서지만, 음악은 혼자 완성할 수 없다. 연주자의 노력과 지휘자의 고민, 관객의 마음이 만날 때 비로소 공연은 살아난다.
이명근 지휘자가 바라는 미래도 다르지 않다. 자신의 이름보다 악단의 실력이 기억되고, 클래식이 일부 사람만의 음악이 아니라 시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문화가 되는 것이다.
공연이 끝나면 조명은 꺼지고 지휘자는 무대 뒤로 사라진다. 그러나 누군가의 마음에 남은 위로와 감동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지휘봉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음악으로 마음을 잇는 사람. 이명근 지휘자가 군산에 남기고 싶은 것은 화려한 명성이 아니라, 자신이 떠난 뒤에도 계속 울려 퍼질 음악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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