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교인 해오름복지재단 이사장이 장애인복지 현장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대신해주는 것’보다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작업장을 만들고,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고민하는 것도 결국 같은 생각에서 출발한다.
그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자신의 경험이 있다. 열다섯 살 무렵 시력을 잃기 시작하면서 6년 동안 집 안에 머물렀던 시간이다.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추 이사장은 어릴 때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이던 1970년 수술을 받았지만 시력은 다시 떨어졌고, 사람을 만나는 일조차 두려워졌다. 그렇게 세상과 거리를 두고 지내던 어느 날 CBS의 시각장애인 대상 방송 ‘루터나아워’를 통해 점자를 알게 됐다.
시각장애인도 점자를 배우고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은 다시 세상으로 나갈 계기가 됐다. 직접 점자를 배우고 특수학교에 진학하면서 사람들과 다시 어울리기 시작했고, 친구들이 길을 안내해 달라고 하거나 필요한 물건을 찾아달라고 부탁받으면서 자신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 마음에 남은 생각이 있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구나.” 도움을 받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경험이었다. 이후 장애인복지 현장에서 그가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에도 이때의 경험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 도움받는 삶에서 스스로 살아가는 삶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 장애인단체 활동을 시작한 추 이사장은 자신처럼 집 안에 머물던 장애인들을 찾아 나섰다. 점자를 가르치고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돕는 일에서 시작해 장애인이 지역사회 안에서 이동하고 배우며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일로 활동을 넓혀갔다.
그 과정에서 만난 장애인 부모들의 고민은 또 다른 질문을 남겼다. 부모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자신들이 세상을 떠난 뒤 자녀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였다.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였고,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장애인의 삶을 오래 지켜내기 어렵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결국 부모에게 물려받은 자산을 법인 설립을 위해 출연했고, 2008년 1월 29일 해오름복지재단을 세웠다. 현재 재단은 추진장애인자립작업장과 장애인공동생활가정 4곳을 운영하며, 모두 45명의 장애인이 재단에서 생활하거나 근로하고 있다.
추 이사장이 재단 운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일’이다. 추진장애인자립작업장에서는 약 34명의 장애인이 근로와 직업훈련에 참여해 산업용 안전장갑과 일반용 장갑을 생산하고 있다. 재단에서는 군 육·해·공군용 면양말과 다이소 일반 양말·덧신 등을 생산해 지금까지 35만 켤레를 납품했다.

그에게 일은 단순히 소득을 얻는 수단이 아니다. 사람을 만나고 자신의 역할을 찾으며 사회와 연결되는 과정이다. 그래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제품을 먼저 선택받기보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 품질로 경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애인이 만든 제품이니까 사달라고 하고 싶지는 않아요. 좋은 제품을 만들어 품질로 경쟁하고 선택받아야 장애인의 일자리도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업장에서 직업적응훈련과 개인위생훈련을 비롯해 배드민턴, 난타, VR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일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리고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까지 중요하게 보기 때문이다.
“사람은 환경이 달라지면 달라질 수 있어요.” 세상과 떨어져 지냈던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면 더욱 분명한 생각이다. 환경이 달라지면 사람도 달라질 수 있고, 그 변화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장애인복지의 역할 가운데 하나라고 그는 본다.
◇ 일할 수 있는 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곳으로
그가 생각하는 장애인의 삶은 일자리에서 멈추지 않는다. 일터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았다면, 이제는 안정적으로 생활하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자신의 삶을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오름복지재단이 장애인공동생활가정 4곳을 운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모가 언제까지나 자녀 곁을 지켜줄 수 없는 만큼, 부모가 없는 이후에도 장애인이 지역사회 안에서 생활하며 자신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추 이사장이 말하는 자립 역시 경제적인 독립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하고 사람을 만나며 좋아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는 것까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해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그래서 지금 그가 풀고 싶은 과제는 ‘공간’이다. 현재 협소하고 나뉘어 있는 시설을 한곳으로 통합해 장애인들이 함께 일하고 생활하면서 안정적으로 직업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그의 우선 과제다.
그리고 그가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공간은 단순한 작업장이나 생활시설에 머물지 않는다.
“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시설을 만드는 게 저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그가 만들고 싶은 곳은 결국 장애인이 도움만을 기다리는 곳이 아니다. 일하고, 함께 살아가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곳이다. 6년의 어둠을 지나 다시 세상으로 나온 한 사람의 경험은 이제 다른 장애인들이 자신의 역할을 찾고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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