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시가 지역 상권을 지키기 위해 내놓은 공공배달앱인 ‘배달의 명수’. 착한 수수료와 공공의 뜻을 담아 야심차게 출범했지만, 현실의 벽은 냉혹했다. 민간앱의 성능과 마케팅, 브랜드 파워 앞에서 존재감은 점점 옅어졌고, 소비자들은 점점 멀어졌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배달의 명수’는 단순한 실패로 규정할 수 없는 존재다. 5년에 걸친 26억 원의 투자, 그리고 여전히 그 뜻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
길을 다시 묻는 지금, 답을 찾을 수 있을까.
◇“0% 수수료에 광고비도 없는 착한 배달앱이 왜 이렇게 힘들까.”
그 시작은 분명 명확하고 선했다. 2020년 3월, 산업·고용 위기로 침체된 군산의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시가 직접 개발한 공공배달앱 ‘배달의 명수’. 민간앱에 비해 불합리하게 높은 수수료를 감당해야 했던 지역 소상공인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로 떠올랐다.
출범 첫해, 843개의 가맹점과 12만여 명의 가입자, 71억 9,000만 원의 매출. 이어진 2021년에는 매출 90억 원을 돌파하며 ‘공공이 해도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었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상승 곡선은 서서히 꺾였다. 2022년 73억→ 2023년 52억 →2024년 40억에 이르더니, 2025년 3월 현재 매출은 약 9억 원. 사용자 수와 주문 건수는 매해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가맹점수는 현재 1,345개로 큰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전쟁은 인구수로 이기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가맹점 수가 늘면 승전고가 울릴까? 배달의 명수는 그렇게 믿는 듯하다. 하지만 2025년 현재 1,345곳. 수치는 늘었지만, 주문은 줄고, 소비자는 사라졌다.
총성 없는 플랫폼 전쟁에서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라 ‘전투력’이다. 앱의 속도, 편의성, 실시간 정보, 익숙한 브랜드와의 접점, 그리고 무엇보다 '쓰는 사람'인 것이다.
군산시는 지금 엉뚱한 전선을 파고 있는 듯하다. 내실보다 외형, 실제 이용보다 보여주기 실적에 매달린 결과는 이미 숫자에 드러난다. 배달 전쟁의 전략지도, 지금 바뀌어야 할 때이다.
◇ 가맹점은 그대로인데, 진짜 이용자는 줄었다
<연도별 운영실적 현황 3월 31일까지 실적>
연도별 | 가맹점수 | 가입자수 | 주문건수 | 매출액 |
2020년 | 843 | 121,571 | 298,260 | 7,191,412,777 |
2021년 | 1,351 | 11,885 | 362,476 | 9,064,,620,068 |
2022년 | 1,453 | 5,570 | 276,248 | 7,305,348,791 |
2023년 | 1,341 | 3,630 | 191,805 | 5,206,251,760 |
2024년 | 1,295 | 3,487 | 145,639 | 4,024,907,252 |
2025년 | 1,345 | 511 | 31,740 | 906,974,597 |
‘배달의 명수’의 연도별 운영 실적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흐름이 눈에 띈다. 가맹점 수는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지만, 주문 건수와 매출액은 해마다 곤두박질쳤다는 점이다.
2020년 843개였던 가맹점은, 2025년엔 1,345개로 500곳 넘게 증가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주문 건수는 298,260건에서 31,740건으로, 매출액은 약 72억 원에서 9억 원 수준으로 급감했다.
가맹점 수가 많아진다 해서 앱을 더 많이 쓰는 건 아니다. 2021년을 기점으로 가입자 수와 실주문 건수가 줄기 시작하더니, 2025년엔 가입자 수가 고작 511명. 이쯤 되면 ‘누구를 위해 가맹점을 늘리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공공앱이 소상공인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면, 음식이 나가는 시스템에 집중해야지, 음식점 숫자 늘리는 데만 공을 들이는 건 본말이 전도된 셈이다. 마치 주문 없는 식당을 동네마다 하나씩 세워놓고, “이 동네엔 식당이 많습니다” 자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실제로 현장의 상인들은 “앱 울림이 없어 꺼두는 날이 많다”고 토로한다. 이쯤 되면 가맹점 수는 오히려 현실과 괴리된 ‘행정용 지표’일 뿐이다. 이제는 “얼마나 많이 등록됐는가”보다 “얼마나 자주 이용되는가”로 시선을 돌려야 할 때다.
◇ 공공앱의 기술적 태생적 한계… 표준화가 만든 느린 플랫폼
배달의 명수가 느리다는 말, 그건 단순한 운영 미숙의 문제가 아니다. 공공배달앱은 정부와 지자체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구조를 따라야 한다. ‘전자정부 표준프레임워크’를 의무적으로 적용해야 하는 탓이다. 이 시스템은 안정성과 호환성 면에서는 강점을 지니지만, 변화와 유연성에서는 민간에 비해 크게 뒤처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민간앱에서는 점포 내 ‘재고 현황’이 실시간으로 반영된다. 특정 햄버거나 케이크가 품절되면 즉시 소비자 화면에 반영돼 주문 착오가 없다. 하지만 ‘배달의 명수’에서는 이 같은 재고 관리 시스템이 아직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소비자가 원하는 메뉴를 보고도 막상 주문 단계에서 ‘품절’이라는 메시지를 마주하는 일이 잦다.
이 차이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원하는 소비자에겐 치명적 경험이다.
◇ 왜 익숙한 음식이 없지?… 대기업 브랜드의 부재
또 하나의 소비자 이탈 요인은 ‘배달의 명수’에는 파리바게뜨, 버거킹, 롯데리아, 투썸플레이스 등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입점해 있지 않다.
이는 공공앱의 소상공인 보호라는 철학적 한계이기도 하다. 정책적으로 대기업 가맹은 지양되거나 제한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큰 제약이 된다. 익숙한 메뉴를 찾는 학생, 청년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들이 빠진 상황에서, 이용률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 소수 인원이 전담하는 배달의 전쟁
‘배달의 명수’는 현재 3명의 운영 인력(올리고컴퍼니)이 전담하고 있다. 이들은 가맹점 모집부터 앱 운영, 홍보 마케팅까지 전방위로 뛰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일은 단순히 ‘배달의 명수’만이 아니다. 이들은 여러 사업을 동시에 맡아 처리하는 다중 역할을 하고 있으며, 사실상 상권 활성화의 핵심 인프라로서 큰 부담을 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팀은 상권활성화재단과 긴밀히 협력하며 '배달의 명수'를 끌고 가고 있다. 상권활성화재단은 단순한 행정 지원을 넘어서, 앱 활성화를 위한 실질적인 협력 파트너로서 다양한 이벤트 기획과 소상공인 간담회, 지역화폐 연계 등 운영 현장의 숨은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배달의 명수’는 더 일찍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소수 정예’라는 말도 결국 여유가 있어야 붙는 수식어다. 기껏해야 손에 꼽는 인력이 매일 가맹점 발품 팔고, 앱 오류 대응하고, 홍보 아이디어까지 짜는 상황에선 아무리 착한 정책도 ‘체력 한계’를 만나게 된다. 이들의 고군분투가 빛을 발하려면, 구조적 개선이 절실하다.
◇ 단순한 앱을 넘어, ‘공공 플랫폼’의 미래 고민해야 할 때
‘배달의 명수’는 단지 배달 앱이 아니다. 그것은 지역 상권을 지키고, 불공정한 플랫폼 구조에 균열을 내기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실험이었다.
5년의 시간 동안 반복된 이용률 하락, 기술적 한계, 소비자 이탈은 공공이 만들어낸 시스템이 현실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제는 "왜 안 되는가"를 따지는 데서 벗어나,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좋은 정책’만으로는 사람을 끌 수 없다. ‘배달의 명수’가 다시 설 자리를 찾기 위해선 단지 이벤트가 아닌, 앱의 속도, 인터페이스, 정보의 실시간성, 브랜드 다변화, 사용자 경험(UI/UX) 등 전방위적 변화가 필요하다.
박지형 국장(군산시상권활성화재단)은 “이 앱은 단순히 음식을 주문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지역의 자영업자와 골목상권을 지켜내기 위한 하나의 통로”라면서, “지금 필요한 건 포기나 비판이 아니라, 방향을 다시 세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 군산타임즈의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